본문 바로가기

최종편집일 2022-06-27 17:03

  • 기획취재 > 명사초대석

교직 40년 참스승의 길 걸어온 이판술 교장 정년 퇴임

“기본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자” 좌우명 후세 교육에 접목 돋보여

기사입력 2017-03-01 17:31

페이스북으로 공유 트위터로 공유 카카오 스토리로 공유 카카오톡으로 공유 문자로 공유 밴드로 공유

 

고령군 개진면 생리가 고향인 이판술(李判述, 62)교장선생님은 2017년 2월 28일부로 교직 40년의 정년을 맞이하며 퇴임했다.

 

과거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을 정도의 존경의 대상이었지만 요즈음은 스승상이 다소 퇴색된듯하여 안타까움도 있지만, 이판술 교장선생님은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을 오로지 교직을 천직으로 알고 교단에서 후진 교육에 몰두해 온 그의 교육철학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오로지 한길을 걸어오신 교육철학이나 그의 교육관을 대담을 통해 들어본다.        대담/최종동 편집국장

 

▲  이판술 교장 집무 모습

 

* 정년퇴임을 축하와 함께 그동안 수고하셨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교직 40년의 퇴임소감과 교육적 철학을 듣고 싶습니다.

 

제자들을 훌륭한 지역사회나 국가의 동량으로 지도하는 것이 모든 교육자들의 보람이자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대학원에서 초등특수학을 전공했기에 아이들의 초등학교 시절이 인격형성에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항시 염두에 두고 가르쳤습니다. ‘기본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자’가 저의 좌우명인데, 그러한 기본 정신을 아이들에게 주입시키고 바르게 가르치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최선을 다하지만 기본과 절차가 바르지 않으면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의 신조는 『학생은 선생님의 사랑만큼 성장하고 학교는 교장의 열정만큼 발전한다』는 것을 늘 마음에 새겨 두고 실천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  최근 펴낸 문집

 

* 최근 李判述 敎職 斷想 ‘정답 없는 삶 이야기’ 문집을 펴냈습니다. 책을 출간하게 된 동기는?

 

정년퇴임식 대신에 40년간의 교직생활을 통해 『학생 있는 곳에 선생 있다』는 신념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학교를 경영하면서 틈틈이 기록하고 모아 둔 자료들을 정리하여 퇴임기념 문집을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李判述 敎職 斷想 ‘정답 없는 삶 이야기’』는 이판술 교장의 인생과 삶 자체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자서전 형식으로 가족과 주위의 고마운 분들에게 이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발간사에서 밝혔다.

 

교학상장(敎學相長)과 무실역행(務實力行)의 진정한 교육실천가

 

* 대부분의 교직생활을 고향에서 보내셨으며, 특히 고령초등학교와는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  송별회에서 부인 곽동선 여사와 축하케익 절단

 

1. 고령에서 첫 교직생활을 하다

 

1977년 3월 1일자로 고령 쌍림면의 월막초등학교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처음 5학년 담임이었는데 이 학생들과 2년간 담임하여 처음 졸업시킨 첫 제자이기도 하다. 월막초 제18회 졸업생입니다.

 

여름부터 방학도 없이 학생들과 낮에는 교실, 저녁에는 숙직실에서 6학년 전 과정을 다시 공부하고 체력도 키우는 지와 체를 강조하여 지도한 생각이 납니다.

 

당시는 쌍림중학교에서 반 편성 배치고사를 관내 4개의 초등학교 졸업생들에게 평가하여 그 결과를 입학식 날 발표를 하는데 월막초등학교는 18회, 19회, 20회 졸업생들이 3년 연속 우수한 학생으로 선발되어 입학식에 참가한 타 학교 학부모로부터 부러움을 사기도 하고 학부모들이 학교로 와 크게 잔치를 베풀어 준 기억이 있습니다.

 

교직 2년 만에 연이어 18회, 19회를 졸업시킨 영광을 가지고 있으며, 누구나가 그렇겠지만 ‘초임지에서의 추억이 오래 남는다.’고 하는데 나도 예외 없이 교직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 중의 하나가 월막초등학교입니다.

 

▲  가족이 한자리에~

 

2. 역사와 전통의 1번지, 고령초등학교(1)

 

월막초등학교 4년 근무를 마치고 모두가 선호하는 고령의 1번지인 고령초등학교로 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6학급 100명 정도의 학교에서 1800여명 40학급의 학교로 오게 되니 근무 여건의 변화를 실감하고도 남지 않겠는가? 나에게는 엄청난 변화였습니다.

 

학급당 학생 수가 많은 큰 학교에서 근무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선배선생님들의 지도와 조언을 들으며, 나름대로 근무 목표를 설정하여 실천하였습니다.

 

즉 8시 전에 출근하여 제일 먼저 교실에 들어가 학생지도 및 생활지도 등 학급경영의 영역을 우선 처리하고 그 다음 담당 업무를 추진하였습니다.

 

학습지도와 방과 후 과제는 꼭 당일에 담임과 학부모가 확인하여 그 결과를 공유하였습니다.

 

학생들의 기본생활 규범과 일기, 알림장 등의 학급 생활 규칙을 학생들과 함께 정하여 매일 매일 실천할 규칙을 한 것을 기록토록 하였습니다.

4년간 근무하면서 73회와 74회 졸업생들과 6학년을 함께 했습니다.

 

▲  교장선생님의 가족을 소개하고 있다

 

3. 또 다시 고령초등학교로 오다(2)

 

1993년 3월 1일자로 고령초등학교에 두 번째 근무하는 학교가 되었다.

쌍림면 하거리 출신의 교육 선배이신 이○○교장선생님이었습니다.

이 교장선생님은 매우 적극적인 교육행정을 펼치신 분으로 기억됩니다.

 

본군에서 벌지초와 일량초등학교 교장으로 계시다 1990년 3월 1일자로 고령초등학교로 오셔서 근무하고 계셨습니다.

 

당시 일량초등학교에 근무하시면서 학교 예산이 없어 교육환경 시설을 개선하지 못할 상황이었는데 교장선생님의 사비로 먼저 지출하면서까지 학교를 경영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 6학년을 담임했다. 84회 졸업생들입니다.

 

▲  둘째아들이 "아버님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리고 있다

 

4. IMF와 세 번째 고령초등학교 근무(3)

 

1997년부터 불어 닥친 대한민국의 금융위기 때문에 온 나라가 뒤죽박죽이 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1998년 당시 나는 고령교육청으로의 파견교사 신분이었는데 IMF사태로 모두들 원적교로 복귀 명을 받게 되었다. 업무를 맡은 지가 6개월이 지난 때였습니다.

예상대로 1998년 9월 1일자로 또 고령초등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벌써 세 번째 근무하게 된 학교로 고령초등학교는 나와 참 인연이 많은 학교인 것 같았습니다.

 

▲  스승의 날 이판술 교장이 정부 포상을 받고 교육감과 담소(우측 이영우 경상북도 교육감)

 

당시에 가장 기억에 남고 보람으로 생각하는 것이 영·호남과 일본과의 친선 교류활동을 직접 기획하고 실행한 것입니다.

 

가. 전남 순천북초등학교와 자매결연을 통한 영·호남 교류 사업 전개

교무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영·호남 자매결연을 통한 도·농간 교류 사업에 공모한 결과 200만원의 사업비와 담임과 학생이 1박 2일간의 교류방문 및 홈스테이로 양 지역의 상호 친선과 문화적 교류를 가졌습니다.

 

▲  꽃길조성

 

양 지역의 학부모와 교직원들이 년 1회씩 상호 방문하고 교육에 대한 협의회등을 개최하였으며, 당시 이○○ 고령군수님, 이○○ 순천북초등학교 교장선생님과는 지금도 교류를 하고 있다. 고 들었습니다.

 

또 하나 특색있게 운영한 것은 양 학교의 학부모들이 참가하는 학부모체육대회를 개최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  일본교류 스사, 사다쬬

 

나. 첫 외국 출장 - 대가야와 일본 문화의 만남

 

1997년부터 일본의 시마네현 사다쬬와 스사소학교의 관계자들이 고령군을 방문하여 고령초등학교와의 자매결연 및 학생 교류 사업을 요청하였으나 예산 문제로 어려움을 겪다, 당시 고령군새마을지부 회장을 맡고 있었던 이○○ 전 군수님의 도움으로 일본의 사다쬬와 스사소학교의 교직원과 학생 15명을 이○○회장 댁에 초청하여 접대한 것이 시초라고 알고 있습니다.

 

▲  일본교류 스사, 사다쬬

 

2003년 11월, 3박 4일의 일정으로 고령초등학교가 일본을 방문하는 해였다. 일본어 통역을 할 고령향토사학자이신 김○○선생님과 고령군청의 협조로 일본 방문에 따른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가야금 연주와 일본어 노래 연습, 군청으로부터 지원받은 기념품, 일본어로 인사말 자료 등을 만들어 학생들과 공부한 기억도 있습니다.

 

▲  농촌봉사 수락국교

 

일본과의 교류에서 퍽 인상 깊게 느낀 교육의 모습은 11월이라 날씨가 추운데도 반바지 차림으로 운동장에서 체육을 하고, 중간 시간에 질서 정연하게 질서운동을 하면서, 체육관에서 실내 운동으로 단체활동을 많이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학부모들이 지역의 읍·면단위 혹은 마을의 회관에서 교육에 대한 열띤 토론과 학교 교육에 대한 지원 활동(PTA, 사친회 – 우리의 운영위원회와 같은 성격)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처음 일본 문화를 접해 본 학생들과 교원들도 이구동성으로 일본의 근검절약정신과 남에게 폐 안 끼치기의 교육 덕목을 실천하며 공공의 장소와 거리 등을 깨끗하게 하는 준법정신을 보고 놀랐습니다.

 

*  고령초등학교 졸업사진

 

5. 4번째 고령초로 오다(4)

 

발간사에서 밝혔듯이 40 플러스 알파 이야기의 최종 종착역이 된 학교입니다. 교사로서 10년 6개월, 교장으로 1년, 모두 11년 6개월을 이 학교에서 근무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령초등학교 근무는 나에게 교직의 마지막을 보람과 긍지, 자랑으로 삼을 기회이면서도 정년 1년을 앞두고 고령초등학교에 네 번째 근무하게 되어 걱정이 앞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  스카우트 봉사활동

 

선생님들에게 부임 일성으로 네가 고령초등학교를 희망하여 오게 된 과정과 교육관과 경영관을 소상히 밝히고 교육주체로서의 역할과 공직자로서의 자세를 당부하고 고령초등학교의 역사성과 전통, 영남지역과 대가야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상세히 소개하면서 『우리 학교는 이런 역사와 전통이 있습니다.

 

100년을 넘어 새로운 100년의 꿈을 시작하는 학교』로 발전시키자고 하였습니다.

 

▲  스카우트 봉사활동

 

6. 고령군에서 근무한 학교들

 

개진과 예동, 운수, 우곡초등학교에서의 학생지도와 교육활동은 또 하나의 보람과 추억, 그리고 자부심으로 와 닿습니다.

 

▲  개진초 졸업사진

 

가. 첫 벽지학교, 개진초등학교

 

교육기관에서 볼 때 내가 나고 자란 개진면은 고령군에서 가장 오지인 곳으로 인식되고 있는 곳입니다. 개진초등학교로 희망하여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이 학교에서 또 6학년을 맡게 되었습니다

.

당시 고적대 지도의 권위자인 조○○교감선생님의 권유로 고적대를 지도한 경험과 개진초·중병설학교라는 특성상 초등교사가 중학교 1학년의 미술과 음악을 지도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히 남습니다.

 

당시 지구별 고적대 경연대회를 직동초등학교에서 했는데 출전하기 위하여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에서 고적대의 움직이는 대형을 그려놓고 몇 번씩 연습하였는데 대회 당일에는 긴장한 탓인지 코피를 쏟은 기억이 있습니다.

 

3년 계속하여 6학년을 담임했는데 졸업생 중에는 경북대학교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합격한 정○○군과 해군사관학교 졸업 후 해군 대령으로 진급한 김○○군 등이 있으며 인천과 서울, 진해 등에서 국가의 동량으로 봉직하고 있다는 소식도 듣고 있습니다.

 

▲  예동초 졸업사진

 

나. 예동과 운수, 우곡초등학교에서의 보람

 

지금의 덕곡초등학교는 예전의 예동초등학교입니다.

덕곡면의 2개 학교가 통폐합되면서 예전의 덕곡초등학교는 지금 덕곡면 주민들이 운영하는 예마을로 바뀌었고 대신 예전의 예동초등학교를 덕곡초등학교로 교명을 바꾸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덕곡초등학교는 가야산의 산자수명한 풍광을 벗 삼아 자연의 혜택으로 많은 인재들이 배출된 지역입니다.

 

2년동안 보직교사와 6학년 담임으로 근무하면서 학부모와 지역민들과 함께 인자하신 이○○ 교장선생님의 정년퇴임식을 이○○학부모 회장의 도움으로 성대하게 개최한 기억이 보람으로 남습니다.

 

또 처음으로 교육과정 시범학교로 지정받아 운영 책임을 맡아 추진한 운수초등학교는 나에게 큰 영광을 준 학교입니다.

 

운수도 덕곡면과 마찬가지로 가야산의 정기를 받은 옥수들이 성주 가천, 수륜을 거쳐 대가천을 이루고 고령을 적시는 풍요로운 곳입니다.

 

운수초등학교는 나에게 기회의 학교였다. 교원 인사에서 점수와 관계없이 특례로 이동한 곳이 운수초등학교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교육청에서 운수초등학교의 시범학교 운영 주무로 내가 선택되었기 때문입니다. 운수초등학교에서의 2년 근무는 우곡초등학교로 이동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입니다.

 

우곡초등학교는 모두가 근무하길 원하는 벽지학교로 고령군의 선생님들이 단위학교에서 취득한 점수를 비교하여 점수가 높은 순으로 발령하는 학교입니다. 나도 운 좋게 1996년부터 우곡초등학교에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  학부모 강의연수회에서

 

*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근무한 경력은 얼마나 됩니까?

 

7.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근무한 13년의 소회들

 

고향을 떠나 김천, 경주, 의성, 성주, 구미에서의 교직생활은 나에게 또 다른 고향의 고마움과 향수, 지역의 특성과 교육환경, 사람들과의 관계 등에서 많은 경험을 한 기회였습니다.

 

고령군 근무 13년을 채우고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울릉도를 가지 않고 일부러 점수가 낮은 1990년 3월 1일자로 김천 조마초등학교로 발령이 났습니다.

 

대구와 고령에서 가정과 교직생활을 하다 김천이라는 객지로 발령을 받고 보니 통근도 되지 않는 지역이라 걱정이 매우 컸습니다.

 

또 6학년을 담임하였는데 고령에서와 같이 방학도 없이 학교에서 열심히 지도한 기억이 남습니다. 졸업생들의 중학교 진학은 김천시내의 김천중학교를 제일 선호하고 학부형들도 김천중학교에 가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졸업생들이 시험을 쳐서 김천중학교에 많이 진학하여 학부모들이 좋아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3년간 본교와 첫 분교장 근무를 통해 5,6학년 복식학급 운영 등을 배운 것과 오직의 산골 생활 경험이 지금의 나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12월부터 눈이 오면 버스가 들어오지 않아 1주일째 숙직실에 머물거나 면사무소가 있는 조마(강곡리)까지 걸어 내려와 김천으로 나가는 등의 어려움이 자주 있었다. 특히 1주일 정도 집에 가지 못하면 학부모님들이 챙겨주시는 반찬으로 지낸 기억도 있습니다.

 

▲  고령초등학교 전경

 

8. 2004년 이후, 학교 경영자로서의 활동과 보람들

 

2004년 3월 1일 처음으로 학교관리자로 발령을 받고 고령을 떠났습니다. 과연 내가 학교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잘 할 수 있을까?

 

학생지도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과 학교경영에 대한 교육철학의 실현에 어떤 난관과 어려움, 열정이 요구되는지? 사실 겁도 나고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  고등학교 소풍

 

가. 경주에서 교감으로 첫 출발하다.

 

2004년 3월 1일자로 양남초등학교로 발령이 났다. 희망 근무지를 경주로 하지 않았는데도 경주로 발령이 났습니다.

 

경주는 의외였다. 교원인사의 정보 부족과 고향과 대구 가까운 곳에서 근무하려는 욕심으로 순위와 관계없이 고령과 칠곡을 1,2순위로 희망한 것이 큰 잘못이었다. 인사의 기본 원칙도 모르고.....

 

그것도 경주 시내에서 가장 먼 양남초등학교 였습니다.

원자력지역 교육사업의 일환으로 지원되는 예산으로 학교의 교육시설과 환경개선, 특성화된 방과후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선생님들은 경주에서 출·퇴근을 하셨는데 눈비가 오면 교통안전에 매우 취약하고 위험이 있는 지역이었지만 상계분교장이 벽지였기에 많은 선생님들이 희망하여 오는 학교였습니다.

 

▲  고령군 육상 우승

 

나. 장학사와 성주에서의 교직생활

 

2005년 1월 10일, 장학사가 되기 위한 전직 시험에 응시하게 되었다.

당시의 조○○교장선생님과 경주교육지원청 김○○교육장님의 권유와 배려로 교감만을 대상으로 하는 선발 시험이었습니다.

 

담당 장학사로부터 우수한 성적으로 선발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곧 발령이 난다는 말을 듣고 고향 고령으로의 내신도 포기하였습니다.

 

2005년 9월 1일자로 의성교육청 장학사로 발령받아 교원인사, 과학, 정보, 연구원 업무 등 장학사 고유의 교육행정을 담당하였습니다.

 

▲  교육대학 교생실습 졸업

 

교육은 학생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신념에 따라 2006년 9월1일자로 학교로 전직하였다. 도교육청뿐만 아니라 나를 아는 모든 동료들이 의아하고 이상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전문직으로 전직 후 1년, 2006년 9월 1일자로 성주군 대동초, 용암초, 성주초등학교 교감으로 근무하였습니다.

 

이 때 무리하여 신체적 건강은 물론이지만 정신적 건강의 중요성이 이때처럼 피부로 와 닿는 시기는 없었습니다.

 

▲  고령지역화 교재

 

의성과 성주에서의 생활을 뒤돌아보니 ‘나’라는 존재보다 ‘남’을 의식하는 외형적인 면을 너무 의식하고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2009학년도부터 계속적으로 창의성교육 경상북도교육청지정 시범학교로 선정되어 인성과 창의성을 함양하여 21세기 국제화․정보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인재육성과 고향 출신 윤종건 박사님을 초빙하여 관내 교원 및 학부모를 대상으로 창의성교육에 대한 연수와 성주의 1번지 성주초등학교에서의 학부모연수, 교육과정중심의 학교경영(다문화 시범학교, 자율학교 지정, 유․초 자율장학 중심학교 지정, 영재학급 운영 등)에 중점을 두고, 학교장의 교육철학과 교직원들의 교수․학습활동과 교육행정지원을 적극 펼쳐 교내 장학력을 제고하는 노력들을 적극 추진하였으며, 각종 대회에서 학생과 교원들이 우수한 능력을 발휘하며 자부심과 긍지감을 갖도록 교육지원 활동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  고령초 학생사진

 

다. 학교의 최고 경영자로 근무한 보람과 추억들

 

2011년 3월 1일, 구미 도개초등학교, 학교경영 책임자로 첫 임무를 시작한 학교입니다. 구미는 우리나라 산업단지의 상징적 지역이다. 낙동강 강가의 허허 벌판을 내륙의 최대 산업단지로 조성하여 한국의 실리콘벨리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도개면은 구미국가산업단지와는 거리가 멀고 발전의 혜택이 거의 없는 지역이었으나 내가 본 도개는 정말 좋은 곳이었습니다.

 

배산임수의 지형과 한국 불교의 성지인 모례정이 있는 곳으로 인물의 고장이었습니다. 낙동강을 품고 있다고 해야 하나, 옆에 끼고 큰 바위 얼굴같이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산과 들이 고향 개진 생리 앞의 낙동강 그 모습과 너무나도 비슷한 고장으로 느껴졌습니다.

 

영의정과 같은 인물과 학자들을 배출한 신곡리, 도개리 등과 근대이후 한국을 이끌어 가는 인물들이 도개면 곳곳에서 출생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부모회를 새롭게 조직하고 총동창회를 부활 것이 기억이 남습니다.

 

2년간의 농산어촌 공동교육과정 운영(도개, 옥성, 덕촌, 해평)과 작은학교 가꾸기 사업 학교로 선정되어 운영한 것이 보람으로 기억되고 결과 보고서로 제출하여 도교육청 선정 우수학교로 선발되는 영광도 않았습니다.

 

1년 6개월의 근무 기간을 마치고 성주 선남초등학교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성주는 교감으로 3개 학교, 4년을 근무한 경험이 있어 낯설지는 않으나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하여 24년간 교사로 근무한 고향 고령에서 단위학교의 장으로 근무하고 싶은 마음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공직자는 언제, 어디서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맡은 직분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나의 공직관이고 업무관입니다. 인사 여건상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고 그 자리를 피하면 된다. 식의 직무 관은 생리에 맞지 않습니다.

 

▲  고령초 73회 제자들과 즐거운 시간

 

* 10년 만에 다산초등학교로 귀향하셨습니다

 

라. 10년만의 귀향, 다산초등학교에서의 고마움들

 

2004년 3월 1일, 고향을 떠난 지 꼭 10년. 2014년 3월 1일자로 고령 다산초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였습니다.

 

고령군내에서 유일하게 학생이 증가하는 학교, 교실을 증축하는 학교입니다.

객지에서 가끔씩 고향 소식과 여러 이야기들을 공·사적 모임에서 들어 왔지만 고령교육의 발전을 위해 헌신해야겠다는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하였습니다.

 

또한 나를 아는 지역민, 학부모님, 제자들, 관계되는 모든 분들과의 관계에서 부담이 되지 않을까? 고향에서 교장직을 잘 수행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학교의 교육적 특성과 교육 3주체와 지역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하여 부임 일성으로 교육 4주체가 중심이 되는 ‘학생·학부모·선생님·지역민이 행복한 다산교육’을 만들자. 라는 방침을 정했습니다.

 

학생 수 증가에 따른 교실 부족 현상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하여 2014학년도 말에 교실 4칸을 증축하여 학생들의 수업권을 확보하였습니다.

 

또 급식소 현대화사업 대상학교로 지정되어 2014년 추경예산에 반영되어 2015년 10월에 준공하였습니다.

 

자치단체인 고령군으로부터 교육환경 개선 사업으로 5천만원을 지원받아 체육관 주차장 콘크리트 포장과 남편 진입로 개설과 포장공사로 학생들이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였습니다.

 

2015년도는 다문화정책연구학교 지정 및 3개국 교사국제교류, 중국 소학교와의 교류자매결연 사업으로 양 학교가 MOU를 체결하고 상호 방문교류도 가졌습니다.

 

무엇보다도 교육주체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 지원으로 학교가 발전하는 모습에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  영동초등학교 17회 졸업

 

* 끝으로 군민과 학부모님들에게 정년퇴임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9. 『이판술의 교직 단상, 정답이 없는 삶 이야기』로 정년퇴임 인사드립니다.

네 번째 근무한 고령초등학교에서의 1년을 정말 바쁘게 보냈습니다.

 

1번지 학교답게 교육공동체 구성원들 모두가 학교교육과정 운영과 특색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많이 개발·운영·적용하고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군·읍 단위 지역이라 행사와 내방객도 많아 학교가 항상 역동성과 생동감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장으로서의 부족함과 모자람의 아쉬움이 남아 있기도 합니다.

 

▲  영동초 졸업 앨범

 

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채워가는 집단지성의 과제를 남기면서, 발간사와 14 플러스 알파와 40 플러스 알파를 통해 기록한 나의 교직생활 단상을 부족하지만 있는 그대로 소개하였습니다.

 

지금까지 함께한 교직 선·후배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이판술의 교직 단상, 정답이 없는 삶 이야기』 가 어떻게 비춰질지 걱정이 많습니다.

글재주가 없어 특별히 기교를 부리지 않았습니다. 단지 교직생활을 그대로 기록하였습니다.

 

▲   월막초 18회 졸업생

 

먼 훈 날 자식과 가족들에게 나의 생활사와 교육사를 밝혀 자료화한 것을 남기려고 한 것에 불과합니다.

 

▲  월막초 수학여행

 

특히 고령초등학교에 대한 역사와 전통에 대한 자료와 기록들을 조금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지역과 향토의 자료로 활용해 보겠습니다.

 

그동안 학부모님과 지역에 계시는 여러분들께서 사랑과 협조, 학교교육활동에 대한 변함없는 관심을 베풀어 주심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월막초 축구준우승

 

* 약력과 경력

◎경북 고령군 개진면 생리 274 출생

◎대구교육대학교, 대구대학교특수교육대학원 초등특수전공(석사)

◎논문 : 특수학급 편성과 운영 및 장학지도에 대한 교사의 인식

특별연구교사 : 농촌지역 초등교사의 과학 및 과학교육의 인식에 대한 조사·연구

 

◎약력

1. - 교사, 교감, 교장 40년(고령 27년, 그 외 13년)

2. - 구미 도개초, 성주 선남초, 고령 다산초, 고령초 교장

3. - 교육과학기술부 제3기 사이버 현장교원자문위원

- 한국교총 정책협력위원

- 한국교총 한국초등교육위원회 위원

- 경북교총 대의원

4. - 성주군 창의성교과연구회 회장

5. - 성주군 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  송별회에서 축하연주

 

◎경영 활동

6. - 2009 교육홍보 우수학교(성주초)

7. - 2010 학교평가 우수학교(성주초)

8. - 2011 작은 학교 가꾸기 사업 우수학교(도개초)

9. - 2013 전원학교 사업 우수학교(선남초)

10. - 2015 다문화정책연구학교 운영(다산초) - 2016 경북 100대 교육과정 우수학교(고령초)

 

▲  고령인터넷뉴스 개국1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이판술 교장(왼쪽 네번째)

 

◎포상 현황

11. - 교육감 표창 2회

12. - 한국교총 및 한국보이스카우트 총재 표창 4회

13. - 장관 및 총장 표창 4회

14. - 대통령 표창 1회

15. - 황조근정훈장

16. ◎연구대회 – 전국 및 도 단위 15회 입상

좌우명 : 기본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자.(교학상장·무실역행)

 

이판술 교장선생님의 가족으로는 부인 곽동선 여사와 아들 두 명을 두었다.

 

▲  2016.5.31 영동초총동창회 창립(초대 총동창회 회장에 이판술 회장 추대)

 

▲  총동창회장으로 추대받고 수락 인사말을 전하는 이판술 회장

 

*  긴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최종동 기자 ()

댓글4

스팸방지코드
0/500
  • 이현경
    2017- 03- 02 삭제

    학생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신 진정한 교육자 이판술 교장선생님!! 정년퇴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존경합니다~~

  • 이근덕
    2017- 03- 01 삭제

    이운현 고령인터넷뉴스 대표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수필가이신 최종동 편집국장님의 탁월한 문장력과 멋진 사진배얼 등의 노고에도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영동초28회강정화
    2017- 03- 01 삭제

    회장님 그동안 수고하셨슴니다 ᆢ 이제 제2 막의 인생 설계는 늘 건강과 행복이 피어나는 꽃길이 되시길 기원 하면서 자서전 내신책 꼭 읽어볼께요ᆢ

  • 이근덕
    2017- 03- 01 삭제

    이핀술 교장선생님이시며 영동초등학교 총동창회 회장이신 선배님의 정년퇴임을 축하드립니다. 어제 뵈었는데 한마디 말씀도 안 해 주시고 축하꽃다발도 못드렸습니다. 아쉽고 죄송합니다 이제 제2인생 출발도 멋지게 하시기를 빕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